작은 일에 충성하는 마음과 하나님의교회
옛날 어떤 부잣집에 세 며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50세 생일을 맞이한 부자는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부자는 며느리들에게 앞으로 10년 뒤인 60세 생일 때에는 자신에게 선물을 한 가지씩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거저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마련할 비용을 주겠다고 하면서 며느리들에게 쌀 한 줌씩을 주었습니다.
첫째 며느리는 ‘오늘 아버님이 즐거우시니까 이런 장난을 하시나 보다’ 생각하여 받은 쌀을 닭에게 모이로 던져 주었습니다. 둘째 며느리는 ‘쌀 한 줌으로 어떻게 생신 선물을 살 수 있어?’ 하며 쌀독에 도로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셋째 며느리는 받은 쌀 한 줌을 놓고 ‘비록 이것이 적은 것이긴 하지만 무엇 때문에 아버님이 이런 부탁을 하셨을까?’ 하며 시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부자의 60세 생일이 돌아왔습니다. 부자는 세 며느리를 불러놓고 물었습니다.
“내가 십 년 전 생일에 너희들에게 부탁한 것이 있을 것이다. 오늘 선물들은 가져왔느냐?”
첫째 며느리는 깜짝 놀라더니 “아니! 도대체 언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라고 대꾸했습니다. 둘째 며느리는 “그때 아버님이 농담하시는 줄 알고 저는 쌀독에 그냥 넣어 버렸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며느리는 가져온 장부를 시아버지에게 내밀었습니다. 빼곡히 적힌 장부 말미에는 암소 5마리, 돼지 10마리, 염소 20마리, 닭 100마리가 적혀 있었습니다. 부자가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묻자 셋째 며느리는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처음에 아버님께서 쌀 한 줌을 주실 때 ‘아버님께서 왜 이걸 주시면서 10년 뒤의 생신 선물을 마련하라고 하셨을까? 쌀 한 줌은 값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버님의 생신 선물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고 밤새도록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에 이웃집에 가서 병아리 한 마리와 그 쌀을 바꿨습니다. 병아리를 정성껏 키우다 보니 병아리가 어느덧 자라서 달걀을 낳게 되었고 달걀을 부화시켜서 다시 그 병아리들을 키웠습니다. 이렇게 닭이 100여 마리 정도 되었을 때 일부를 새끼 염소와 바꿨습니다. 그 염소도 튼실하게 잘 자라 새끼를 낳게 되어 20마리 정도 되었을 때 돼지와 바꾸기 시작했고, 돼지도 많아져서 이제 돼지를 팔아 소를 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0년 세월 동안 마련한 것이 장부에 기록된 내용대로입니다.”
셋째 며느리의 말에 가족들은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너희들도 다 보았듯이 우리 가문의 모든 재산은 오늘부터 셋째 며느리에게 맡기겠다”고 선언하고 셋째 며느리에게 가산을 다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세 며느리에게 똑같이 쌀을 한 줌 주었는데 반응은 각각 달랐습니다.
작은 것을 작은 것이라 소홀히 여긴 마음과, 작은 것이지만 소중히 여겼던 마음은 판이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셋째 며느리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겨자씨 속에 이루어가는 천국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뜻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초대교회 복음의 역사도 화려한 궁궐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아니라 마가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나 세리 같은 빈천한 사람들을 불러 제자로 삼으시고 그 작은 겨자씨를 통해서 기적을 일구어 내셨습니다.
마지막 복음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능력이 겨자씨에 비견될 만큼 미약하고 작더라도, 겨자씨가 자라나 많은 새들이 깃들 수 있는 큰 나무가 되듯이 하나님께서 백 배, 천 배의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는 존재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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